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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실화 영화 줄거리 및 결말, 관동대지진과 관동대학살, 아나키즘

by 왕방울아로미 2023. 7. 19.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제훈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던 영화 박열의 줄거리 및 결말, 시대적 배경이 되는 관동대지진과 관동대학살, 아나키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줄거리 및 결말

일제강점기 인력거를 끌며 먹고사는 박열(이제훈)은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편, 박열이 쓴 '개새끼'라는 시를 보고 그에게 반한 후미코(최희서)를 만나게 되고, 후미코는 박열에게 바로 동거를 제안하고 함께 살게 됩니다. 박열은 주변 사람들과 조국의 독립과 일본 천왕을 죽이기 위한 비밀결사 조직 '불령사'를 만들어 의열단에서 폭탄을 전달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뜻하지 않게 흘러가게 됩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혐오는 더 깊어지고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됩니다. 학살을 피하기 위해 구치소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지만 다른 곳에서 이미 붙잡혀있던 불령사 동료가 고문에 못 이겨 박열의 일본 천왕 살해계획을 실토하는 바람에 박열은 형무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결국 박열은 대역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는데 법정에 서기 전 자신의 조건을 변호인에게 요구합니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게 되지만 감형받아 박열은 22년 2개월의 복역을 하고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해방 후 일본에 있던 윤봉길, 박정기, 이봉창의 유해를 발굴하여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했습니다. 후미코는 옥중에서 숨을 거뒀는데 박열의 바람대로 1931년에 경북 문경에 묻혔으며, 그녀의 자서전을 세상에 나오도록 도왔습니다.

 

 

관동대지진과 관동대학살

1923년 9월 1일 일본 제국 사가미 만을 진앙으로 발생했던 사가미 해곡 대지진이라고도 불립니다. 7분여동안 진행된 지진은 도쿄, 요코하마, 지바현, 가나가와현, 시즈오카현 등의 지역을 집어삼켰고 14만명의 사망자와 4만명의 실종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이는 동일본 대지진의 6배, 고베 대지진의 16배로 피해액은 지진 발생 전년도 국민 총생산액의 1/3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지진이 발생한 후 3~4주 동안 발생한 혼란기에 당시 일본에 존재하던 조선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일부 일본인들이 혼란한 상황을 틈타 조선인을 상대로 제노사이드를 벌였는데 이를 관동대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들이 일본에 지진을 일어나게 해달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사회주의자들과 조선인이 결탁하여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약탈하고 있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게 되고, 조선인들에게 관심 없던 일반 민중들도 이를 믿게 되어 조선인들에 대한 적개심이 빠르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무기로 무장한 자경단을 빙자한 폭도들은 조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색출해서 마구잡이로 죽였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인과 일본인도 많은 수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에 자경단이 공권력에 위협이 될 정도가 되자 경찰과 군부는 체제 안정을 위해 자경단을 저지하고 단속했지만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이 벌어지고 난 후였습니다. 결국엔 학살사건으로 인한 사법적 책임을 진 기관과 사람은 없었고 일본 국적의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한국 언론에 사과하고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에 참가했습니다. 그를 2004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일본 변호사연합회에서도 2003년 관동대지진 학살사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라고 했으나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이를 무시했습니다.   

 

 

아나키즘

주로 무정부주의자로 설명되지만 이는 아나키즘의 특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아나키즘은 정부뿐만이 아니라 국가, 민족주의를 넘어서 자본주의와 같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체제를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계몽주의, 이상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가지게 되는데 아나키스트가 말하는 이상향을 현재 세력 간의 정치적 균형, 사회문화적 시스템과 과학 기술 수준 등에 비춰봤을 때 실현하기 어렵다는 평가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에 속칭 현실에 타협한 개량주의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반대했던 의회제를 이용해 인민들의 신뢰와 정당성을 얻고 국가를 해체하겠다는 주장을 하지만 결국 국가체제의 하수인이 되거나 배신을 당하고 죽는 등 강도 높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나키즘은 "나라를 작게 쪼개서 힘의 균형이 없어진다면 나라라는 개념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점차 사상이 발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아나키스트들은 권력 그 자체를 적대하고 사상 자체가 폭력과 강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큰 세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말만 앞선 이상주의자와 자신들의 사상 탓에 발생할 소요조차 꺼릴 정도로 고고했던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종종 동양 사상 중에 도가와 묵가의 사상과 접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간 민족 간 갈등이 심했던 근대 시기에 그들의 권력 배척 현상은 성취 수단 결여로 나타나 아나키스트는 집권 세력에 환영받지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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